몇 일이 지나면 장인어른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일년이 되는 날이다. 장인어른은 평생 글쓰기로 삶을 보내신 분이다. 어려서 북한의 함흥에서 태어나셔서 해방무렵 남한으로 오시고, 우리 아버님과 함께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지금의 연세대학교를 다니셨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서 1967년에는 아시아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서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고급언론과정에서 과학 언론을 공부하시고, 귀국 이후에는 한번도 옆을 보지 않고 오로지 글로써 과학과 기술의 발전의 중요성을 일반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헌신을 하신 분이다.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에 장인어른이 그동안 써놓은 글들, 그리고 새롭게 출판을 위해서 준비하고 계시던 여러가지 글들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관한 책을 쓰시려고 틈틈히 쓰신 글들, 그리고 자서전을 위해서 틈틈히 적어놓은 글들이었다. 평생 “글쟁이”로 살아간 장인어른의 모습에 도전을 받는다. 무려 38권이라는 책을 출판을 하시고, 아직도 버릇처럼 글을 써나가고 있다는 장인어른의 모습은 글쓰는 것이 아직도 힘들고 부담으로 느껴지는 나에게는 참 부러운 모습이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시기전에 참 정성을 기울여 쓰신 책이 두권이 있다. 하나는 <대통령과 과학기술>이라는 책이다. 한국 과학기술원이 처음 생길 무렵 부터 대변인으로 계시면서, 한국 기술의 초창기 시절의 여러가지 뒷이야기를 자료로 가지고 계시던 장인어른께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그냥 사라지는 것이 무척 아쉬웠던 것 같다. 또 다른 책은 <우리과학, 그 백년을 빛낸 사람들>이라는 책이다. 지난 백년 동안 한국 사람으로 과학과 기술 발전에 기여를 한 모든 사람들의 인명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무려 네권의 방대한 분량인 이책을 쓰시기 위해서 장인어른은 온갖 국내 도서관과 대학교의 인명자료를 뒤져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슈퍼스타들 뿐아니라, 우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놓으셨다. 그들이 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그분들의 이름이라도 기록을 해야한다는 그런 생각에서 책을 쓰셨다고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마치 몇몇 슈퍼스타들의 몫인양, 그래서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일방적인 논리에 반해서, 한명의 천재가 천재로서의 재질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뒤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연구실과 실험실에 “별 볼일 없는” 연구를 하는 99명의 과학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쏟아 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20:9)”라고 적고 있다. 아마도 글쟁이들은 그런 답답함이 속에서 불일듯이 일어나야 하나보다. 평생을 글을 쓰신 장인어른도 그토록 하시고 싶었던 말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속에 답답함이 없는 글쟁이는 진정한 글쟁이가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교수라고 하는 직업이 뭔가? 왜 연구를 하나? 왜 글을 쓰나? 그리고 왜 강의를 하나? 내 속에 답답함이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연구로 나의 마음을 이끌고, 그렇게 해서 한 연구가 또한 새로운 답답함을 내 속에 만들어 낸다. 연구전의 답답함은 보이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라면, 연구 이후의 답답함은 내가 발견한 것을 나누고 싶은 갈망에서 비롯하는 답답함이다. 그리고 그 답답함때문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 같다. 그 답답함이 없다면, 아마도 붓을 꺽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요즘 표현으로 하면 컴퓨터를 꺼 버려야 할 것 같다. 평생 전하고 싶은 이야기 때문에 답답함을 가지고 사셨던 장인 어른을 다시 한번 기억을 해보면서, 글쟁이로서의 나의 삶의 모습을 점검해 본다. 나는 아직도 그 답답함이 있는가?
훌륭한 장인어른을 두셨군요. 누님도 이화여대에서 교편을 잡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이러한 양가의 훌륭한 내력이 유교수님의 든든한 자산과 자부심으로 받쳐주었으리라 생각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저로서도 교수님의 글이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전 대학교때 리영희 교수님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서슬퍼런 군사정부하에서 남북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바라본 자세와 무엇보다도 그런 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전달한 용기에 크게 감명을 받고 저도 글을 쓰면 리영희 교수님처럼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었습니다.
요즘 뉴욕타임즈의 폴 크루먼교수의 칼럼을 읽으면서 대학교때 리영희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낍니다. 이번 겨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중상모략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폴 크루먼 교수가 오바마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지식과 연구에 바탕을 둔 글로써 엄호/대변인의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폴 크루먼 교수의 용기와 신념에 크게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있을때, 지식과 연구에 바탕해서 진실을 알리는 교수의 리더쉽과 용기가 더욱 더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며 좋은 하루되세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글을 많이 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