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ew site

I managed to move my blog site from Typepad to WordPress.  Given that I have been writing papers on WordPress for several years by now, I should have made the transition a long time ago. At least, I di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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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magining our cities with digital innovation [Beyond]

This is my latest contribution to Beyond by the Weatherhead School.

Re-imagining Our Cities With Digital Innovation

Herbert A. Simon, the late management scientist and Nobel Laureate, argued that we are living in an “artificial” world, one that is shaped by man-made artifacts. Throughout human history, we have mobilized our collective power with increasingly powerful tools to transform the natural world to advance our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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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경영의 시작과 끝은 사람입니다

얼마전 땅콩회항 사건으로 문제가 된 어느 재벌 집안의 자녀가 전문경영인으로 구색을 갖추기 위해서 내세운 것이 “디자인경영”이라고 한다. 디자인경영 전문가를 모셔다가 강의도 듣고, 디자인경영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도 얻고 그런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그 기사를 읽다가 화가 났다. “디자인경영”이라는 내용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분노가 생긴다. 왜냐하면 디자인경영은 그냥 그렇게 폼 잡으라고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디자인경영의 처음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끝도 사람이다. 그런데, 매뉴얼을 사람보다 중요시하고, 자기 기분을 사람보다 중요시하는 그런 회사가 디자인경영을 한다고 하니까 좀 기가 막힌다. 요즘 디자인경영으로 유명한 한 대기업의 비상식적인 경영을 또한 직접 경험했다. 디자인경영보다 상식경영이 더 필요한 때이다. 디자인경영은 단지 경영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 경영은 사람이다. 예전에 은사이신 윤석철교수님께서 경영의 핵심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있다고 말씀하신 생각이 난다. 그리고 경영학은 조직을 다루기 때문에 본인의 저서의 제목을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해 볼까 고민하시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최근에 뵌 선생님께서 “세상에는 디자인경영도, 생산관리도, MIS도 없어요. 오직 경영만 있을 뿐입니다”라는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경영은 사람이다. 이제 “디자인경영”이라는 말을 그만 사용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경영을 그저 돈 버는 수단으로만보는 그런 사람들의 냄새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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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icture of the Urban Apps & Maps team worked on Gotcha project)

a response to the critics of my recent HBR piece

An HRB article I wrote with Kyungmook Kim, entitled “How Samsung Became A Design Powerhouse”, stirred up rather strong reactions from some of the readers. I feel that it is important respond to those criticism. Below is the reply that I posted on the HBR site. 

The purpose of the article we wrote for HBR was to show how — and why — Samsung Electronics made a difficult and remarkably successful transition, in a short span of time, from a low-cost OEM maker to a consumer-focused company with design-centered thinking at its core. The details of this transition, including how Samsung built design expertise in-house and how designers overcame resistance from engineers, are relevant for any emerging-market company or engineering-centric company seeking to find its way out of the low-margin world of the commodities supplier.

True, both my coauthor, Kyungmook Kim, and I have connections with Samsung, but it was our connections that gave us an inside view of the transition. Over the past three years, we talked to former and current designers, managers, and executives at Samsung, as well as some of its suppliers, and heard about Samsung’s struggles to make design the driving force of innovation. Design in this context is far more than just a product’s look and feel; it is a human-centered mind-set. Far from being a puff piece, the article chronicles those struggles and shows that as software comes to dominate consumer products, further serious challenges lie ahead for Samsung.

Our HBR article isn’t intended to compare Apple and Samsung. Instead it’s aimed at showing how an emerging-market company with little initial design knowledge can become truly design-centric and thereby compete with developed-market design powerhouses like Apple.

청지기로서 경영인과 디자인

기독교적 경영이란 무엇인가?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청지기로서의 사명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경영은 다스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성경적인 출발점을 저는 위의 창세기 1장 28절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경영한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경영학의 입장에서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그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학부때 은사이신 윤석철 교수님의 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저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대 경제학과를 들어가서 행시를 봐서 관료가 돼서 국가와 민족에 공헌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학력고사를 원하던 만큼 잘 못 봐서 재수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저보고 그냥 경영대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는 법대와 경제과가 더 높고 경영대는 그 밑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경영학과 경제학의 차이를 전혀 모르시고 “그게 다 그게 아니냐” 하시면서 그냥 경영대를 강력히 추천하셨고, 그냥 그말을 듣고 저는 경영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입학 후에 경영학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안 생겨서 그냥 바로 헌법학개론, 행정학개론, 경제학원론 등의 책을 구해서 독서실에서 행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2학년 1학기 때 윤석철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을 봤는데, 그 서문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거기에는 “모든 학문은 기초에서 출발해서 응용으로 흐르는데, 경영학은 응용학의 종착점이다. 왜냐하면 경영학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이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글을 읽는데, 그야말로 내 몸의 모든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았습니다. 이런 학문을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그날로 행시 준비하던 책을 다 치워버리고 경영학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세상을 경영하라는 것이 모든 기독교인에게 주어진 명령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경영의 원리를 공부하는 학문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경영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의 실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glimpse of the glory of God)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실체를 보여준다는 것은 이런 말입니다. 제가 살던 클리블랜드는 오대호 때문에 1년에 일조량이 미국에서 가장 적은 곳 중 하나입니다. 해가 쨍쨍뜨는 날은 일년에 채 50일이 채 안 됩니다. 그렇게 회색하늘 만 보다가 보면, 하늘이 파랗고 그 뒤에는 눈부신 태양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삽니다. 그러다가 안 보이던 해가 어느 날 갑자기 파란하늘 뒤로 드러나면 태양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경영자들이나 종업원들이 기업에 일하다가 정말 신명나게 일하면서, “아 일하는 게 이렇게 의미가 있을 수 있구나”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아니면 소비자들이 어떤 정말 잘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면서 “야…라면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라고 고백을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순간이 바로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주장하신 하나님의 경영의 비밀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순간을 통해서 바로 ‘아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거였구나’ 라는 맛을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새로운 힘을 얻게 하고 또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독교적인 경영이라고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현실, 경영의 현장은 우리의 죄로 인해 타락이 되었고, 그래서 자원이나 마켓도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경영을 통해서 하나님의 원래 계획하신 창조의 진실을 일부분이나마 보여주는 것, 그것이 저는 바로 경영자로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영자로서 이와 같은 가능성에 대한 확신은 바로 하나님이 성령님을 통해서 주신 더 좋은 세상에 대한 비전인 것입니다. 예레미아 선지자가 ‘내 속에 불같은 것이 있어서 내가 말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느니라’ 라고 했는데 사실 경영자들에게도 동일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도 현재 존재하는 컴퓨터를 보며 더 새롭고 좋은 것이 없겠느냐고 하는, 참을 수 없는 분노(irresistible power of the vision)를 느꼈다고 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입니다. 이와 같은 꿈이 바로 진정한 경영자를 만들어 낸다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건축가중 한명인 Frank O Gehry를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빌딩을 많이 지은 사람이었는데 경영학 적인 관점에서 인터뷰하고 연구를 했습니다. 그 건축가는 빌딩을 짓다 보면 자신의 마음의 눈에 완벽한 빌딩이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빌딩이 보이고 그 비젼이 그 하여금 빌딩을 짓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역할은 마음의 눈에 보이는 완벽한 빌딩을 보이는 현실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했고, 건축 디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점에서 가장 괴로운 때는 바로 빌딩이 완성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꿈꾸는 빌딩과 실제로 이땅에 지어지는 빌딩은 똑같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이세상은 완전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자신이 꿈꾸는 것과 똑같은 빌딩을 이땅 위에 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끊임없이 노력을 하지만, 일단 빌딩이 완성되면 더 이상 자신이 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가장 기뻐할 시점, 바로 빌딩이 완성된 싯점이 그에게는 오히려 가장 괴로운 때라 것입니다. 그는 아주 특이한 스케치를 합니다. 그 스케치는 자신이 마음 속에 보고 있는 그꿈을 담고 있는 스케치입니다. 특이한 것은 그는 빌딩이 끝날 때까지 계속 스케치를 하는 것입니다. 빌딩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자신의 꿈이 제한되기 때문에, Frank Gehry는 그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서 계속 스케치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왜 그가 그 빌딩을 왜 짓는가 하는 꿈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경영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완벽하게 행복한 소비자, 완벽하게 만든 제품, 완벽하게 행복한 종업원을 꿈꾸는 것이 아니냐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불완전 한 세상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꿈을 완벽히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번에 안 되면 다음 번 프로젝트로, 다음 번 고객에게로 끊임없이 나가면서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경영이 아니냐 라고 하였습니다.

Peter B. Lewis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흔히 보는 경영은 그렇지 않습니. 대부분 그냥 경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이고, 경영학은 돈을 많이 벌도록 돕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대기업의 등기이사들 연봉을 공개한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감옥에만 있었는데도 엄청난 연봉을 받은 몇몇 소유주가 특별히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일반 사람들이 경영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자괴심이 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한테 많습니다. 그래서 수 많은 크리스천 경영인들도 스스로 ‘경영이 하나님 나라와 무슨 관계야”, 아니면, “돈 만이 벌어서 선교헌금 많이 하면 되지.” 또는, “교회에서 봉사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경영학을 생각하면 굉장히 교만하고 잘난척하는 경영자들이나 컨설턴트들, 월 스트리트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경영에 대한 나쁜 이미지들이 우리들 가운데 있습닏다. 저는 바로 이것이 저에게 하나의 사명으로 다가왔습니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나쁜 경영을 구속(redeem)하는 새로운 경영학을 제시하는 것이 저와 같은 크리스챤 경영학자들이나 크리스챤 경영자들의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경영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의 동산과 인간의 도성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동산(garden), 즉 에덴동산을 창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오자마자 아담과 하와의 후손들은 도성을 만들었습니다. 도성은 경제학적 용어로 하면 인공세상 (artificial world)입니다. 이 인공세상은 우리가 만든 물건으로 가득 차있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기업들이 경영활동을 통해서 만든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들은 집과 차를 만들고, 길을 깎고, 다리를 놓고, 터널을 놓고, 아이디어를 만들고,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생산활동에 참여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성경책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maker로 만드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기자는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드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maker, 하나님과 같이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만드는 창조의 주체로 삼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와 같은 창조의 과정에서 또한우리가 사용하는 도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자연의 물건, 자원을 가지고 그것을 발전시켜 만듭니다. 이와 같은 것을 위해서 과학과 기술이 존재하고 그를 통해서 우리는 자연에 천연자원을 합성해서 새롭게 재결합을 해서 artifact를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만든 artifact, 즉 인공물과 그것들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연구하면 우리는 우리를 maker로 만드신 하나님 비밀에 대해서 배울 수 있겠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리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든 동산(garden) 위에 지어진, 동산 속에 있는 자연물을 이용해서 새롭게 우리가 만든 도성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도성은 성경이 말하는 인공세상입니다. 오늘도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도 전자파나 공해물이 가득 차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전자파는 우리가 빠른 속도로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질병을 가져다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시는 물도 병에 든 정류된 물입니다. 우리가 먹는 물고기도 자연산은 거의 없고 성장호르몬과 항생제가 가득 들어있는 양식 물고기 입니다. 심지어 한라산에 가도 LTE가 터지고 독도에도 인터넷이 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순수한 자연은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클리블랜드에서 살 때, 봄이 되면 그곳 이리호(Lake Erie)에 가서 낚시를 가끔하고 했습니다. 그곳에서는 송어가 잡히는데, 처음에는 자연산 인줄 알았습니다.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봄이 되면 클리블랜드 시에서 양식한 새끼 송어들을 대량 방목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다. 더 이상,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은 동산이 아니고, 우리가 만든 도성인것입니다. 관계(relationship)조차도 이제는 조직화되었습니다. Facebook, myspace, 트위터 등 관계에서도 도성이 (artificial world)이 침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람들의 도성, 즉 인공세상 (artificial world)은 결국은 조직과 기술이라고 하는 두 개의 축으로 형성되어 있다. 이와 같은 도성에서 경영자들은 기술과 조직이라고 하는 인공물을 만들고 유지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경영자의 역할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목적에 따라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그 근본바탕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조직과 물건을 만들고, 서비스를 하는 과정에 어떻게 가치를 창출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를 완성하는,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세상에 보여주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기독교적인 기업이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고 그냥 지극히 일상적인 기업을 하고 작은 구멍가게를 한다 하더라도그 가운데서 모든 경영자는 끊임없이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사역에 끊임없이 동참을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에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 요한은 하늘에서 동산이 내려오는 것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도성을 파괴하고 하나님이 만든 동산으로 돌아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동산위에 우리가 아름답게 하나님의 속성을 들어내는 그런 거룩한 도성을 지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거룩한 창조의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그 일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바로 경영인들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가 바로 경영입니다. 그래서 artificial world, 도성의 창조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맡기신 소명입니다. 이와 같인 모든 경영자는 끊임없이 도성으로서의 인공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가기 때문에 그냥 단순하게 주어진 물건을 manage하는 의미에서의 청지기가 아니라, 새롭게 도성을 끊임없이 만들어나가는 의미에서 창조적 청지기라고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기업은 왜 창조적이어야 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왜 창조적이야 합니까? 기업은 왜 창조적이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시작한다. 밑도 끝도 없이, 그냥 하나님의 창조부터 등장합니다. 다른 종교의 창조의 설화를 보면 인간창조는 대부분의 경우 기승전결에 따라서 결론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근데 특이하게 성경에서는 아무런 맥락 없이 그야말로 뜬금없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선언을 하고 시작합니다. 즉 창조 자체가 선하고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다고 하는 것은 창조를 어떤 수단이나 결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창조 그 자체가 궁극적인 목적이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즐기셨습니다. 세상을 만들고는 좋았더라 하셨고, 인간을 만들고 좋았더라 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비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창조하시는 분이고, 그것을 “선”으로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미지를 따라 만든 우리들도 창조하도록 지음받았고, 창조할때, 하나님과 연결이 되고, 그분이 주시는 선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업을 경영할 때도 기업이 만든 것이 좋았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술가도 자신이 작업한 것이 참 좋았더라는 것을 평가를 들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오늘날 살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아닙니다. 사방에 보면 아픔이 있습니다. 저주가 있습니다. 병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경험하는 이세상은 많은 실패와 실수, 우연이 모여서 생겨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자의 이미지로 만들어졌으나, 우리는 진정한 창조작 아닙니다. 죄로 타락한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자의 원형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자꾸 조작을 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노력 하지만, 이것은 완벽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 만든 것을 쓰다가 안 되면 또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듭니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들은 결코 하나님이 만든 대자연과 달리 온전하게 작동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든 최첨단의 정교한 프로그램이라는 MS에서 만든 Windows 프로그램만 봐도 얼마나 자주 에러가 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성공적인 서비스중에 하나라고 평가 받는 문자 메시지(SMS)도 우연히 생겨난 것입니다. 무선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 사용자의 보이스 메일에 메시지가 있는 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무선전화기는 끊임없이 전화국과 신호를 주고받도록 디자인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데이터가 최적화 되어있지 않아서 데이터 패킷안에 160캐릭터가 빈 상태에서 왔다갔다 했다고 합니다. 노키아의 한 엔지니어가 어느 날 이 엄청난 수의 데이터가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낭비되고 있는 데이터를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없을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만든 것이 문자 메시지입니다. 이미 망은 다 깔려 있고 데이터도 주고 받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넣은 160자의 텍스트를 보내는데 돈을 받으면 그것은 전부 추가 수입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수익을 만드는 서비스로 성장을 했지만, 결코 미리 누가 계산을 해서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자 메시지 위에 트위터가 만들어졌습니다. 트위터가 140자인 이유도 SMS를 이용해서 메시지를 보내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든 인류의 역사, 기술의 역사는 우연과 실수의 연속이라고도 할 수 있다.

로마 시대의 도로는 로마 군인들이 타던 전차의 차축거리에 따라 지어졌습니다. 그 길을 따라서 유럽의 도시에는 나중에 기차선로가 놓여졌습니다. 이렇게 생긴 유럽의 기차 선로폭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표준 기차선로가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알라바마에서 로켓을 만들어서 케네디센터로 운반할 때는 기차로 운반을 합니다. 그리고 로켓의 사이즈는 기차의 선로폭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병들이 나사(NASA)의 로켓 사이즈를 결정했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기술의 역사와 경영의 역사도 처음부터 합리적이고 정교한 계획에 의해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우연과 실수를 고치려는 시도 속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조직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치고 땜질하고 있습니다. 일도 타락하고 기업도 타락하고 시장도 타락합니다. 하지만 소망이 있습니다. 다시오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고, 그것은 또한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대한 소망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도성, 도시, 기업, artificial world를 만드는 이 일이 마지막 때에 없어질, 불필요한 일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비록 우리가 하는 창조와 경영의 사역이 지금은 어설프다고 할 지라도, 하나님을 그것들을 모두 구원(redeem)하셔서 완벽하게 보여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예루살렘에서는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도 할 일이 있다는 얘기입니. 하나님의 큰 계획(master plan) 속에 우리를 경영자로 부르시고 초청하신 것입니다. 경영자들은 그래서 끊임없이 ‘세상이 왜 이 모양인가, 이거밖에 안 되는가’라고 하는 생각을 품고, 끊임없이또 다른 가능한 세상을 꿈꾸고 디자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태도를 저는 거룩한 불만(driven by holy discontent)으로 인한 불행한 의식(unhappy consciousness)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바로 경영으로서의 디자인입니다.

5가지 디자인 태도

Karl Gerstner라는 디자이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디자인은 예술가들에게 국한된 활동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 디자인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Ralph Caplan이라는 또 다른 디자이너는 “디자인이 모든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에는 디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디자인은 하나의 태도(attitude)이고 사고방식(mindset)입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모든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려고 하는 태도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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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태도에는 5가지 요소가 있습다. 첫 번째는 감각적인 것입니다. 비주얼을 강조하고 심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모든 디자인은 아름다워야 한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번째는 열린 결말입니다. 불확실성, 기대하지 않은 결과,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빠른 시간 안에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 태도를 거부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경영에서 디자인과 가장 반대되는 태도는 단순한 과단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영자들은 솔루션 하나가 발견되면 바로 실행 모드로 넘어가길 원합니다. 훌륭한 디자이너들은 그렇지 않다. 처음 발견한 솔루션은 결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아이디어를 계속해서 만지작만지작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탐구해 봅니다. 세 번째는 공감입니다. 끊임없이 고객의 편에서 생각하고 체험하고,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하고 진실한 소리를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떤 면에서 경영자도, 엔지니어도, 디자이너도 아닙다. 좋은 취향을 가진 돈 많은 사용자일 뿐입니다. 사용자의 입장을 너무 잘 아니까 사용자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요구할 수 있었고 그것이 오늘날 애플의 성공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경영이나 디자인은 듣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네 번째는 다차원성입니다. 전체를 보면서 분석적인 것과 종합적인 것을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대상들 사이의 조화를 추구하고 이때 앞에서 말한 아름다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전체적인 조화가 없는 아름다움은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째는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시각화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화는 무형의 아이디어를 실체가 있는 모습으로 변화를 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화는 앞으로 오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를 가능하게 합니다.

이와 같은 디자인이 가지고 있는 다섯가지의 요소를 경영의 일선에 있는 경영자들과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 대학에서는 그들에게 디자인 사고를 훈련시킬 때 주변 동네를 돌아다니며 관찰하게 합니다. 자신들이 본 것을 끊임없이 프레이밍(framing)하고 리프레이밍(reframing)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고 또 어떤 다른 대안이 가능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도록 합니다. 레고 블록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어떤 제약이 있는지, 그 제약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찾아 가도록 도와 줍니다.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5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찾도록 합니다. (1)무엇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가? 무엇이 당신의 열정을 사로잡는가? (2)누가 이해관계자인가? 관련된 사람들은 누구인가? 고객이나 유저(user)의 범위를 넘어선다. (3)아직 채워지지 않은 필요(unmet needs)는 무엇인가? 왜 그게 중요한가? (4)그 채워지지 않은 필요를 채워줌으로써 현재의 상황을 보다 더 낳은 상항으로 바꿀 수 있는 당신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5)해결책을 만들고 유지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은 무엇인가? 이 5가지 질문 중 3가지는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해결책은 문제가 충분히 이해가 된 다음에 고려하도록 합니다.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면 해결책은 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가는 글

끝으로 어떤 사람들이 과연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예수님의 능력으로 변화된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이런 변화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일은 태초부터 거룩함을 위해 부여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일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내려고 노력하면 그 때부터 일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일을 다른 이들이 알아주지 않을까봐 불안해하는 것도 다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걱정을 하고, 불안해 합니다. 쓸데없는 비교의식과 경쟁심도 이로 인해서 시작됩니다. 지나친 자랑과 과시욕도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위로와 인정을 거부하면, 필연적으로 일을 통해 인정을 받으려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가들은 만약 돈을 많이 벌면 자신의 가치가 증명이 되고 사람들이 자기를 인정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일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독교적인 사업가라고 비전을 내걸면서도 일이 또 다른 형태의 올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미 우리가 사랑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일과 자신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진실로 일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구속의 은혜를 깨닫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일을 구속”하는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영진: 현재 미국 Temple Univ. 경영대학 교수이며, 동대학의 ‘Design+Innovation’센터의 디렉터를 맡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Maryland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삼성 신경영 국제학술대회에서 ‘삼성의 디자인경영’에 대한 주제발표를 하였으며, 디자인경영에 대해 여러 기업에서 활발한 자문을 하고 있다. 전자신문에 12회에 걸쳐 이란 글을 인기리에 게재하기도 하였다.
※ 이 글은 2014년 4월 기독경영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CMR 12호에 기제 예정입니다.

The 21st Century’s “Acres of Diamonds”

The rapid and pervasive development of digital technologies have brought unprecedented opportunities for innovations in our society. Tools like smart phones and social media are fundamentally changing the way we work and live. In many cases, these innovations have improved the quality of lives. Furthermore, these innovations have unleashed a new wave of entrepreneurial activities that define American spirit. However, unfortunately, the consequences of digital innovations are not being felt equally by every member of our society. While the digital technology helps companies produce record-breaking profits, many urban communities are left jobless as traditional jobs are being increasingly automated and outsourced through the use of technology. Furthermore, even though the “digital divide” for basic access to digital infrastructure might be shrinking, there is a widening gap between those who create and those who consume new digital innovations. Reducing the growing economic gap and the widening “digital creative divide” is a moral, economic and social imperative for our society.

Temple Unversity’s Urban Apps & Maps program is our response to this grand challenge of our society. It aims at eliminating the digital creative divide by providing real-life learning opportunities to urban youth in North Philadelphia. They learn to identify innovation opportunities in urban America, and then transform them into viable solutions through design, technology and entrepreneurship. This booklet provides a sneak view of what our students were able to do in six weeks, when they were given tools, training, trust and opportunities to think on their own. They ideas are creative, real and practical. We are all inspired by the ingenuity, wit and grit of our students.

The overwhelming success of our summer program is another reaffirmation of the approach that Temple University has taken over the last decade to work with urban youth and neighboring community. This is an approach based on a shared belief and commitment: that our urban community is an incredible source of innovations; that our urban youth are ready to learn new skills for the 21st century; and, that when we invest on our youth, they are ready to build new tools that solves real-world problems.

At the turn of last century, Dr. Russell Conwell once said, “We must know what the world needs first, and then invest ourselves to supply that need, and success is almost certain.” With Urban Apps & Maps program, we are preparing our youth to become the next generation urban leaders who can supply the tools that world needs. With this anticipation, we are looking forward to continuing to work with our students in coming years.

(This is to be included in the report from Apps & Maps 2013 Summer Progrm).

The end of Kodak and the IS Scholarship

I wrote a research essay reflecting on the end of Kodak and the new role of IS scholarship. The core argument is based on the generative nature of digital technology that leads to the emergence of layered modular architecture and how it creates new types of innovation dynamics (an example of such innovation of digital camera). I argue why the idea of product, industry and hierarchical decomposition (as a way of dealing complexity) is now fundamentally problematic.

the tables have turned.pdf (updated final version as it will appear in the Journal of AIS).

글쓰기와 장인어른에 대한 생각

몇 일이 지나면 장인어른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벌써 일년이 되는 날이다. 장인어른은 평생 글쓰기로 삶을 보내신 분이다. 어려l1.jpeg서 북한의 함흥에서 태어나셔서 해방무렵 남한으로 오시고, 우리 아버님과 함께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하시고, 지금의 연세대학교를 다니셨다. 한국전쟁이 끝나면서 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나서 1967년에는 아시아 재단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아서 미국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고급언론과정에서 과학 언론을 공부하시고, 귀국 이후에는 한번도 옆을 보지 않고 오로지 글로써 과학과 기술의 발전의 중요성을 일반인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헌신을 하신 분이다.

작년에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에 장인어른이 그동안 써놓은 글들, 그리고 새롭게 출판을 위해서 준비하고 계시던 여러가지 글들을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관한 책을 쓰시려고 틈틈히 쓰신 글들, 그리고 자서전을 위해서 틈틈히 적어놓은 글들이었다. 평생 “글쟁이”로 살아간 장인어른의 모습에 도전을 받는다. 무려 38권이라는 책을 출판을 하시고, 아직도 버릇처럼 글을 써나가고 있다는 장인어른의 모습은 글쓰는 것이 아직도 힘들고 부담으로 느껴지는 나에게는 참 부러운 모습이다.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시기전에 참 정성을 기울여 쓰신 책이 두권이 있다. 하나는 <대통령과 과학기술>이라는 책이다. 한국 과학기술원이 처음 생길 무렵 부터 대변인으로 계시면서, 한국 기술의 초창기 시절의 여러가지 뒷이야기를 자료로 가지고 계시던 장인어른께서는 그런 이야기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그냥 사라지는 것이 무척 아쉬웠던 것 같다. 또 다른 책은 <우리과학, 그 백년을 빛낸 사람들>이라는 책이다. 지난 백년 동안 한국 사람으로 과학과 기술 발전에 기여를 한 모든 사람들의 인명을 정리해 놓은 책이다. 무려 네권의 방대한 분량인 이책을 쓰시기 위해서 장인어른은 온갖 국내 도서관과 대학교의 인명자료를 뒤져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슈퍼스타들 뿐아니라, 우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놓으셨다. 그들이 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그분들의 이름이라도 기록을 해야한다는 그런 생각에서 책을 쓰셨다고 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마치 몇몇 슈퍼스타들의 몫인양, 그래서 ‘한명의 천재가 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일방적인 논리에 반해서, 한명의 천재가 천재로서의 재질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 뒤에서 묵묵히 자신들의 연구실과 실험실에 “별 볼일 없는” 연구를 하는 99명의 과학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글을 쓴다고 하는 것은 결국 이렇게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쏟아 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20:9)”라고 적고 있다. 아마도 글쟁이들은 그런 답답함이 속에서 불일듯이 일어나야 하나보다. 평생을 글을 쓰신 장인어른도 그토록 하시고 싶었던 말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글 쓰는 속에 답답함이 없는 글쟁이는 진정한 글쟁이가 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교수라고 하는 직업이 뭔가? 왜 연구를 하나? 왜 글을 쓰나? 그리고 왜 강의를 하나? 내 속에 답답함이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연구로 나의 마음을 이끌고, 그렇게 해서 한 연구가 또한 새로운 답답함을 내 속에 만들어 낸다. 연구전의 답답함은 보이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라면, 연구 이후의 답답함은 내가 발견한 것을 나누고 싶은 갈망에서 비롯하는 답답함이다. 그리고 그 답답함때문에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것 같다. 그 답답함이 없다면, 아마도 붓을 꺽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요즘 표현으로 하면 컴퓨터를 꺼 버려야 할 것 같다. 평생 전하고 싶은 이야기 때문에 답답함을 가지고 사셨던 장인 어른을 다시 한번 기억을 해보면서, 글쟁이로서의 나의 삶의 모습을 점검해 본다. 나는 아직도 그 답답함이 있는가?